1. 서툴지만 진지했던, 그러기에 더 아름다운
21년 SBS드라마 '그 해 우리는'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1년에 방영을 시작하여 22년 1월까지 방영했던 드라마 입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고 외쳤던 최웅(최우식 분)과 국연수(김다미 분)가 10년 뒤에 다시 만나 벌어지는 감정의 교차를 보여주는 드라마 입니다.
과거 같은 학교의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의 하루일과를 찍어내는 다큐멘터리에 출연을 시작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거쳐 서로 연인관계가 되었던 둘은 연수의 급작스런 이별 선언으로 웅이는 방황하게 됩니다. 함께 만나던 시절, 전교 1등 답게 연수는 웅이에게 많은 걸 알려주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며, 때로는 혼도 내면서 웅이의 삶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후 각자의 삶을 지난 지 오래, 그 이별의 아픔이 덤덤해 졌을 즈음, 연수는 마케팅 팀장으로 얼굴없이 유명해진 작가 고오를 찾아 나섰고, 그 고오의 정체는 그렇게 지겹도록 머릿속을 맴돌던 이름, 웅이 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연수에게 웅이는 드디어 소금을 뿌리며 시원하게, 혹은 속 좁게 재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그들이 찍었던 다큐멘터리는 역주행을 통해 세상에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고, 웅이의 어릴 적 부터 친구 김지웅(김성철 분)의 제안으로 둘은 다시금 다큐멘터리를 찍게 됩니다.
웅이에게 전부였던 연수, 치열하게 살아왔던 연수와 다시 마주한 웅이는 서로 티격태격 하며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오가며 둘의 감정선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2. 과거와 현재의 공존, 그리고 미래
연수에게는 못 미더웠던 웅이, 늘 1등을 도맡아 하며 성실히 살아왔던 연수에게는 평범한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생활력이 강한 소녀였습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며, 가족이 남긴 빚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연수는 매몰차게 웅이를 떠났습니다. 그 후, 자포자기한 삶을 살던 웅이는 묵묵히 건축 그림을 그리며 스타덤에 오릅니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데, 라고 외치던 웅이는 유명해져 유명 연예인 엔제이(노정의 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고 내가 버릴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라고 말하던 연수는 유능한 마케팅 팀장으로 학창시절처럼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연수의 헤어짐 이면에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가난함만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본인의 불행이 웅이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며 웅이를 떠났었고 혹여 누가 들을까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웅이는 시간이 갈수록 미워하게 되었지만 결국은 또,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버리는 연수에게 한 걸음 다가서게 됩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헤어짐의 이면과 당시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주어와 감정을 생략한채 담담히 출어내는 명대사들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헤집었습니다. 웅이가 기뻐할때는 저도 기뻤고, 연수가 눈물 흘릴때는 저도 흘리게 되었습니다. 현실에 힘겨워 하는 연수와 그 무게를 같이 짊어지고 싶어했던 웅이, 서로 표현하지 못함의 교차선에서 정해진 대로 끌리듯, 다시금 10년의 세월을 지나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3. 결국 그대로 흘러간다
말 그대로, 다시금 시간은 흘러갑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계속되는 둘 사이의 묘한 기류안에서는 친한 친구이기에 짝사랑의 감정을 숨겨왔던 지웅과, 톱스타의 삶에 탈출구 같앗던 웅이를 생각하는 엔제이, 웅이를 사랑하는 부모님과 웅이를 따르는 매니저, 그리고 연수의 모든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해주었던 솔이언니 까지 제 3자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둘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극중 중후반부, 불편하게 느끼던 둘, 스무살이 되면 가장 해보고 싶었다던 오뎅탕에 술을 마시면서, 스물 아홉이 된 그들은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다시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웅이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오만, 네가 날 사랑하는걸 보고싶었나봐,나만 사랑하는 널 보고 싶었나봐, 계속 나만 사랑해줘 부탁이야, 라는 애절한 대사들과 함께 둘의 행복한 시간을 이어 나갑니다.
극 후반, 웅이는 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게 되고, 그 기다림 속에서 많고 많은 일들이 스쳐지나가지만 결국 둘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그리고 또 다시 부부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서로에게 큰 의미가 되었던 두 사람에게 성숙하지 못했던 어린 날, 그리고 20대 후반이 되어 서로의 기억속에 깊이 각인 된 서로를 다시금 의지하며 삶을 살아 나가게 됩니다. 누구나가 꿈꾸던 첫사랑의 재회, 현실에서는 해피한 결말이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닙다만, 이러한 판타지라도 대리 만족을 하게 됩니다.
서로의 담담한 독백 속에서, 평범하게 풀어놓은 문체이지만 감정선이 잘 살아있었고,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결말을 원하는대로 풀어주었던 행복감이 가득한 드라마 였습니다. 잠 못드는 웅이가 연수를 찾을 때, 저도 함께 찾고 있었고 힘에 겨운 연수가 세면대를 붙잡고 울고 있을 때 저도 함께 울었던, 기억에 남는 서로를 투영할 수 있는 드라마 였습니다.